이안은 크리스마스이브를 이틀 앞두고 죽었다.
솔직히 그냥 운 나쁜 사고에 불과했지만, 많은 일들이 그런 식 아니던가? 불운한 사고?
이안은 벌목 회사에서 일했다. 그가 큰 전나무를 베던 중 몇 가지 끔찍한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전기톱의 사슬이 끊어졌고, 브레이크는 듣지 않았으며, 나무는 엉뚱한 방향으로 넘어졌다―요지는, 우리 남편이 살아남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장례식은 조용하고 빠르게 치렀다. (이안은 별로 드러내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전기톱을 만든 회사(로슨 엘렉트릭?)에 연락해 소송 의사를 밝혔다. 그날부터 이메일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코헨 사모님께:
저희 우드 앤 선(1966년 창립)에서는 귀하께서 겪으신 사건을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진심 어린 조의를 표하며 다음의 크리스마스 경품을 동봉합니다. 저희의 제품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555-8891로 전화 주십시오.
봉투 안에는 우드 앤 선의 모든 가전에 쓸 수 있는 50달러 기프트 카드가 있었다.
다음날 다른 전기톱 회사에서 메일이 왔다. 그리곤 한 신문사에서 이안의 삶과 직업에 대한 인터뷰 요청이 왔다. 지역지에서 이안의 사망 소식을 알아냈고 그게 뉴스거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인터뷰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나는 주제를 이안으로 한정 지으려 했다. 자연을 향한 그의 열정, 그가 만든 나무 공예품들, 함께하던 삶 같은 것들로. 하지만 기자는 계속해서 나와 이안이 ‘이상적인 미국 가정’으로서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냈는지 따윌 물어봤다. 우리가 정직하고 근면한 블루칼라 가정으로서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환기시킨다나 뭐라나.
“그이는 유대인이었어요.” 나는 회의적으로 말했다. “우린 친정에 가서 유대인 명절을 쇠었―”
다음날 각각 다른 회사에서 보낸 전기톱 다섯 개가 도착했다. 그들은 내가 그것들을 사용함으로써 로슨 엘렉트릭―이미 파산에 직면한―에 대한 자사 제품의 우수성을 입증하길 원했다.
나는 꺼지라는 말을 다섯 통의 이메일에 각각 담아 보냈다.
하지만 이안의 이야기는 인터넷에서까지 유명세를 얻었다. 그는 크리스마스의 순교자 비슷한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휴가철에 나누는 비극적인 이야기 한 토막. 홀마크 엽서 회사에선 우리 신혼여행 사진에 포토샵한 겨우살이를 붙인 카드 시리즈를 냈다.
“메이시 사의 선물 엽서가 없다면 완벽한 휴일이 아닙니다! 여러분께서 구매하시는 한 장의 카드마다 마찬가지로 한 장의 카드가 다이아나 코헨 재단에 기부됩니다―모든 가정에 트리는 필요하니까요!”를 듣고 난 라디오를 집어던졌다.
오늘 아침 부엌에 가보니 죽 늘어선 스테이크 나이프 주위에 남편의 형제자매들이 모여 있었다. 양복을 차려입은 모르는 사람도 같이 있었다. 그는 자기가 코츨러 나이프의 판촉원이라고 소개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의 비극은 돈이 됩니다, 코헨 사모님.” 그는 예의 바르게 말했다. “전기톱 회사들도 그랬듯이, 이제 칼 이야기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나는 영문을 모른 채 눈을 깜빡였다.
“만약 어떤 이유에서든, 사모님께서 저희 경쟁사 제품 위로 넘어져 주신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