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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읽고 있다면 유감이에요(If you're reading this, I'm sorry.)

공포단편 번역

by 글문어말슴 2019. 11. 12.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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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여기 갇힌 거예요.

 

난 데이빗 스미스라고 해요. 삼 일 전(?)에 여기로 들어왔죠. 적어도 난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여기선 확실히 말할 수가 없네요.

 

내 친구들, 칼하고 엘리야도 같이 왔었죠. 약을 빨곤 비틀거리는 채 미술관에 들르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사실 처음엔 꽤 괜찮았어요. 대마 덕분에 작품들은 한층 멋있게 보였고 우리도 조용히 처신을 잘해서 누구한테 밉보이는 일도 없었죠.

 

두 시간쯤 지나고 슬슬 가야겠다 싶더라고요. 뒤돌아 우리가 지나온 구부러진 복도를 걷는데, 어디로 아무리 가건 항상 다른 전시품이 나오고 그 뒤편으로 연결된 또 다른 복도가 나오더군요. 표지판도 계단도 없어요. 그냥 전시관만 죽 있는 거예요. 우리 몸이 약을 너무 잘 받아서 그런 줄 알았어요. 곧 약 기운이 다 빠질 거고 다 괜찮아질 것만 같았죠.

 

얼마 뒤 우린 멀쩡해졌어요. 그런데 여전히 출구를 찾을 수가 없더군요. 휴대폰 신호도 안 잡히고요. 그대로 우린 몇 시간을 내리 걸었어요. 그리고 처음으로 그 그림을 봤죠.

 

전시관 하나의 벽을 통째 다 채운 그림이었어요. 아주 생생하고 자세한 르네상스풍으로, 텅 빈 얼굴의 사람이 지하 감옥 따위의 곳에서 거세당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더군요.

 

우린 으스스한 기분이 되었죠. 그리곤 계속 걸었어요. 이 악몽에서 벗어날 길을 찾고야 말겠다면서요. 결국엔 다들 지쳤고 임시로 거철 만들어 거기서 눈 좀 붙이기로 했어요. 그리고 아침이 되면 다시 출구를 찾아볼 거라고요.

 

일어났을 땐 칼이 사라졌더군요. 엘리야와 난 전시관을 훑으며 그의 이름을 외쳐댔어요.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방을 샅샅이 뒤졌죠. 그리곤 전날 본 큰 그림이 있던 곳까지 오게 되었죠. 그런데 이번엔 얼굴이 비어있지 않더군요.

 

물론 똑같은 그림이었고 그건 확실해요. 그렇지만 그림이 칼의 얼굴을 한 것도 마찬가지로 확실했지요. 격통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끔찍하게 뒤틀린.

 

그때부터 엘리야와 난 미쳐 날뛰기 시작했어요. 뭘 해야 할지 감도 잡을 수가 없었죠. 폰은 긴급전화까지 포함해서 여전히 안 되고요. 건물의 모든 소방 알람은 먹통이었지요. 그리고 얼마나 멀리까지 우리가 줄달음치든 여전히, 출구는 보이지 않았어요.

 

그리고 다음 그림을 발견했어요. 얼굴 없는 사람의 사지가 찢어지는 장면을, 아주 섬세하게 방 전첼 채워서 묘사해놨더군요. 이쯤이면 당신도 얼추 이 기분을 알겠지요. 어떻게든 이것이 우리 이야기의 마지막이 될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꼬박 하루가 지나도록 아무것도 먹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 앞에서 얼마고 속을 게워내는 데는 문제가 없더군요.

 

어쨌든 우린 또 피곤해질 때까지 몸을 혹사시켰고 눈을 붙였어요.

 

그리고 오늘 아침이 되었어요. 나 혼자더군요. 돌아가 볼 수밖에 없었어요. 내가 이미 아는 사실이라도 재차 확인할 수밖에 없었죠. 거기 있었어요. 캔버스는 엘리야의 겁에 질린 얼굴을 완벽하게 담아냈죠.

 

더 나아가야 한다고 스스롤 설득할 수가 없었어요. 내 그림은 어떤 모습일지 보고 싶지 않았어요. 얼마 안 가 알 수밖에 없잖아요. 여기가 지옥인지 뭔지 모르겠네요. 내가 이런 일을 겪을 만큼의 무언가를 저질렀는지, 아님 그냥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곳에 있던 건지도요.

 

그러니 이걸 읽고 있다면, 미안하지만 희망을 버리는 게 좋을 거예요. 여길 빠져나갈 순 없어요. 어쩌면 당신은 스스로의 그림을 이미 봤는지도 모르죠. 아니면 이 근처에서 내 그림을 봤거나요. 유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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