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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었으면 좋겠어

공포단편 번역

by 글문어말슴 2020. 7. 1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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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에 나는 지니를 만났다.

 

사람들이 행복해하면 좋겠어.” 나는 소원을 빌었다. 엄마는 항상 세상 사람들이 좀 더 웃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웃었으면 좋겠어.”

 

푸른 연기가 훅 끼치며 그것은 사라졌다. 약속이 이루어졌는가 눈을 동그랗게 뜬 꼬맹이를 남겨놓고.

 

그다음 날 나는 사과나무에서 떨어졌다. 비 냄새가 나는 흙에 처박히자 어딘가가 부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부터 줄곧 내 다리뼈는 낫지 않았다.

 

그다음 주에는 하굣길에 오토바이가 날 치고 지나갔다. 깨진 유리가 내 코를 가로질러 고약한 흉터를 남기고 입가의 피부를 뭉개버렸다. 그때부터 한쪽 입꼬리가 항상 씰룩거리게 되었다.

 

그다음 달에는 학교의 아드리안과 싸움이 붙었다. 아드리안은 내 한쪽 귀를 깨물어 거의 잘라냈다. 출혈이 멎을 즈음에는 내 흰 교복 상의가 통째로 피에 물들어 있었다. 내 왼쪽 귀는 그리고 얼굴 옆에 들러붙은 볼썽사나운 살코기에 지나지 않았다.

 

이듬해에는 여드름이 극성을 부렸다. 얇게 죽은 살을 긁어내려고 하도 몸부림친 탓에 내 얼굴과 목 전체에 온통 작은 흉들이 남았다.

 

스무 살이 되자 술집에서 내 얼굴을 본 여자애가 까무러쳤다. 그녀는 기도가 우리 둘을 내보낼 때까지 계속 울고 비명을 질렀다. 이때부터 나는 지니가 내 소원을 잘못 들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서른다섯 살이 되자 내 자전거가 폭우에 휩쓸려 진흙탕이 된 길을 벗어나 강철 난간에 처박혔다. 이가 뭉텅이로 부러져 고치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

 

직장에서 잘린 뒤 나는 신경 섬유종증 진단을 받았다신경 세포들이 응어리와 종양으로 변이하는 유전병이었다. 건강보험은 직장과 함께 사라진 뒤였다.

 

노숙 생활을 하던 중 병을 하나 더 얻었다림프 사상충. 기생충들이 내 부푼 다리에 스멀스멀 차오르고, 늘어진 피부가 켜켜이 쌓여 내 썩어가는 몸과 그 병변들을 감출 지경으로 드리웠다.

 

그리고 지금 무대 한복판에 나는 서 있다. 구부러진 다리와 씰룩거리는 흉터, 엉망이 된 귀, 온통 얽은 자국으로 가득한 얼굴, 멍청하게 벌린 입, 종양이 우둘투둘 돋은 몸에다 코끼리만 한 다리로. 관중들이 요란하게 웃기 시작한다. 감독이 나를 소개하는 소리가 들린다. “세계에서 가장 못생긴 사람입니다.” 눈부신 빛이 날 꿰찌르고 나는 눈을 깜빡여 시큰해진 눈시울을 달랜다. 그러자 보인다. 수천 명이 날 보며 웃는다. 비웃고 있다. 누군가가 사과 먹다 남은 것을 던진다. 이제 남은 평생, 나는 저들의 웃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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