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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단편 번역

by 글문어말슴 2020. 7. 16.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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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식료품 창고 앞에 서서 어깨 너머를 흘끔거렸다. 내 눈은 TV에 못 박힌 척하며 테이프가 카메라를 확실히 가리고 있는지 확인했다.

 

창고 문을 열고 나는 중립적인 쌀 봉지와 중립적인 콩 통조림 몇 개를 옆으로 밀었다. 그리고 몰래 숨겨둔 프루트 룹스 시리얼 상자를 집었다.

 

나는 병이라도 고쳐줄 것처럼 시리얼 한 조각을 집어먹으며 그 맛을 음미했다.

 

언제나처럼 끔찍하리만치, 가히 병적으로 달콤한 맛이었다.

 

난데없이 들려온 노크가 날 방해했다. 시계를 보자 오전 1155분이었다. 오늘은 5분 일찍 온 모양이었다.

 

좋은 아치나는 말을 절었다. “제 말은아침이군요.”

 

해방원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날 보더니 서류철에 무언가 표시했다.

 

솔직히 말해주시죠. 특별히 좋은아침인가요?”

 

아뇨, 절대 아니죠. 그냥 나온 말입니다.”

 

그러면 왜 특별히 좋은아침이어선 안 되는지 설명하세요, 237번 동료님.”

 

왜냐하면 평등이 아직 달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해방원은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피부색이 오늘은 조금 어둡군요.”

 

, 죄송합니다. 어제는 예상했던 것보다 오래 햇빛을 맞았습니다.”

 

해방원은 가방을 뒤적이더니 황갈색 튜브를 꺼냈다. 나는 붙잡개를 이용하여 그 손과의 접촉을 예방하며 물건을 받아들었다.

 

이틀 동안 바르면 원래대로 돌아갈 거예요.”

 

고맙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마침 생각나네요. 새로운 규칙이에요. 오늘부터 우리는 감사를 표하지 않습니다. 감사란 예속 관계를 함의하지요. 우리는 고개만 끄덕이면 됩니다.”

 

나는 어색하게 끄덕였다. 지금이 이걸 하기에 적절한 때인지 궁금했다.

 

해방원은 서류철을 점검했다. “이번 주에만 12점의 무효화 포인트가 쌓였군요. 237번 동료님. 문제가 있어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포인트들은 오해 때문에 받은 거였습니다. 공공장소에서 웃은 건 웃긴 옛날 일이 떠올라서였는데, 동료가 그걸 보고 자길 비웃는 줄 안 거였습니다. 제가 설명하자 이해해주었습니다.”

 

당신이 방금 사과를 했다는 사실은 기록에서 제하도록 하겠어요. 지난주부터 사과가 금지된 것을 유념하도록 해요. 사과란 가짜 겸손을 불러오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또한 오해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아요. 동료가 불쾌해했다면, 당신은 그들의 진실성을 의심해선 안 됩니다. 일의 의도는 중요치 않아요.”

 

이해했습니다.”

 

이번 주 3일 내로 2 무효화 포인트가 남았군요. 집에 머물며 말을 하지 않도록 하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방원은 문을 열고 떠났다.

 

얼마 뒤 복도 건너편 동료의 집에서 작게 소란 피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열쇠구멍에 눈을 대고 엿보았다.

 

해방원의 널찍한 어깨 너머로 동료가 무언가 필사적으로 호소하는 것이 보였다.

 

문을 지나치며 뭉개진 목소리가 기어들었다.

 

당신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집단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사회적 창구에 당신 결속 동료의 임신 사실을 게시했어요. 위원회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게시글을 편집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이것은 즉각적인 무효화 조치의 근거가 됩니다.”

 

나는 동료의 절박한 애원을 듣고 움찔 놀랐다. 해방원은 대기 중이던 무효화 조치원에게 손짓하였고, 무효화 조치원은 동료의 집으로 들어가며 꼼꼼히 강철 커튼을 닫았다.

 

나는 블라인드를 내리고 조명을 껐다. 우리 집 안전쉼터의 문을 열고, 벽의 타이머를 3일로 맞춘 뒤 안대와 재갈을 물었다.

 

웃음이 나왔다. 다행히 아무도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이런 포용주의의 시대에 태어났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행복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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