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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 있다

공포단편 번역

by 글문어말슴 2020. 7. 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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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네 죗값을 치르라.”

 

버스는 멈춰있었다. 다시 움직이고자 하는 모든 시도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휴대폰 전파고 와이파이고 전부 내려갔다. 바깥은 짓무르리만치 두꺼운 안개뿐이었다. 문 바깥에 참을성 있게 버티고 선 것만 빼고는. 형체는 흐릿했지만 그 목소리만은 수정처럼 또렷했다.

 

나와 네 죗값을 치르라.”

 

서류 가방을 쥔 여자가 도망치려다 벌어진 일 이후로, 우리는 딱 한 가지 방법으로만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저것이 누굴 노리고 여기에 왔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처음에는 히스테리가 몰아쳤다. 앞 좌석의 커플은 상대더러 불륜을 저질렀다며 손가락질을 해댔다. 한 여자아이는 제 부모님들이 마약을 하는 광경을 보았다고 털어놓았다. 어떤 노인은 육십 년 점쯤 저지른 시시한 범법행위 따위를 고백하며 흐느꼈다.

 

상황이 고조되었고, 내가 일어나기 직전에는 거의 폭동이라도 터질 수준이었다. 우리 머리를 써야 해요, 나는 말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말한 어떤 고백도 저런복수심에 불타는 천사를 불러낼 정도는 아니에요, 그렇죠? 그러니 저게 진짜 뒤쫓는 게 누군지 알아내자고요. 진지하게 나쁜 짓을 한 사람을 말입니다.

 

바깥에서 무언가가 유리창에 문질러졌다: 발톱? 칼날? 그보다 더한 어떤 것? 그리고 그 냉랭하고 차분한 목소리.

 

나와 네 죗값을 치르라.”

 

좋아, 생각해보자고요. 앞줄의 저 남자. 이 와중에 계속 너무 조용했어요. 의심스럽단 말입니다. 전혀 우리같이 굴질 않잖아요, 안 그래요? 맞아요. 저 남자야. 저 사람이 틀림없어요.

 

처음에는 그가 저항했다. 우리 짐을 뒤지자 가위와 고데기 따위가 나왔다. 남자는 입을 굳게 다물며 버티다 끝내 인정했다. 그가 열두 명의 사람을 살해했다고, 어떻게 그들을 절단하고 유린했는지 말이다. 우린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척 봐도 그 사람이었다. 일단 밝혀지면 당연하다.

 

우리는 문을 열고 그를 밀쳐냈다. 안도감에 젖어 거의 웃다시피. 우린 안전해요!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보지 못했다. 비명뿐이었다. 생각보다 아주, 아주 길게 이어진 비명.

 

그리곤 그것이 다시 문에 와서 섰다. 천천히 고개를 내저으며.

 

나와 네 죗값을 치르라.”

 

좋아, 젠장. 그 사람만 불쌍하게 되었군하지만 이제 와서 거기에 매달릴 순 없는 노릇이에요. 여기 남은 누군가가 저걸 불러왔단 말이죠. 그게 누구인지 찾아내야 해. 죄책감은 나중으로 미뤄두자고요.

 

저 노인. 이야기한 건 좀도둑질뿐이지만 뭔가 더한 짓도 저질렀을 거야! 안 그래요? 자기가 인정했어! 범죄자라고! 저 노인인 거야!

 

덩치 큰 친구들전직 군인이나 뭐 그런 것 같다이 노인을 붙잡아 눌렀다. 그동안 나는 가위를 손에 쥐었다. 살인청부업자라든가, 아니면 깡패 같은 거 아냐? 이제 말하게 만들어야지.

 

바깥에서 그것이 우릴 지켜보았다.

 

우릴 보고 있다면 이게 옳은 게 틀림없어. 그래. 이제 이 사람만 인정하면 돼.

 

노인의 얼굴에 가위를 들이대던 차 그 말이 다시 들려왔다. 나는 자신감을 얻었다.

 

나와 네 죗값을 치르라.”

 

날이 박혀 들어갔다. 조금 전과 달리 무섭지 않았다. 말했다시피, 머리를 쓰면 되는 일이니까.

 

몇 분만 지나면, 바깥의 저것에게 이 안의 죄인이 누구인지 보여줄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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