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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질 때면

공포단편 번역

by 글문어말슴 2021. 10. 21.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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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

 

낙엽이 질 때면, 항상 당신 생각을 해. 이스턴 외곽의 호박밭에 갔던 날 기억나? 비 때문에 허겁지겁 숲에 들어가니까 나무 사이로 그림자들이 춤추듯 드리웠지.

 

그게 현실이었을까? 아니면 꿈으로 위장한 기억일까?

 

바람이 바뀌고 대서양풍이 불기 시작하면 낙엽이 떨어져. 싸늘한 기억들이 미풍을 타고 조각난 채로 찾아들지. 그것들과 함께 걸으면 외투에 거미줄처럼 달라붙는 그 손길이 느껴져. 몇 개는 끝까지 붙들고 있지만, 남은 것만으론 그게 어떤 순간인지 알 수 없어.

 

당신이 아프기 전에, 10월에 과수원에서 사과 땄던 거 기억나? 거기 나무들에서 얼굴을 찾고 다녔잖아. 한 대 맞은 것처럼 생긴 얼굴들이 나무둥치에서 튀어나와 있었지. 얼굴들의 생김새는 잊었지만 느릅나무와 오크나무, 잣나무의 모양은 기억해. 바람이 불면 휘어지는 줄기들과 우리가 손을 잡고 지나가며 들었던 한숨 같은 소리도.

 

우릴 질투한 거였을까? 아니면 당신이 떠난다는 걸 알았을까?

 

낙엽이 질 때면 난 가을 하늘을 바라봐. 해는 찬란하지만 약해지고 있지. 하늘은 넓지만 좁아지고 있어. 머잖아 공기가 달라진 게 느껴지고 겨울이 훌쩍 문지방까지 다가오겠지. 난 잔을 채우고 달이 뜨거나 뜨지 않은 밤을 걸을 거야. 도구들은 이미 트럭에 실어놨지.

 

묘지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아. 내려서 짚은 묘지의 벽은 돌을 만지는 것 같지가 않네. 벽은 부드럽고 살아있어, 내가 기억하는 어느 손길처럼. 하지만 그 순간은 금세 지나가. 돌은 그냥 돌일 뿐인걸.

 

묘지에 들어간 나는 도끼와 삽을 들고 기다려. 내가 도착할 즈음이면 당신은 벌써 흙을 거의 파고 나와 있지. 당신이 흙을 할퀼 동안 나는 우두커니 서 있어. 말을 걸려 하지만 당신은 들을 수 없어. 그렇게나 크게 흐느끼고 있는걸. 질식할 것 같은 어둠 속에서 일 년이 지나 다시 숨 쉬는 건 끔찍하게 힘들겠지. 하늘의 별들이 너무 밝지는 않아? 할 수만 있다면 그것들을 모조리 꺼 줄게.

 

완전히 빠져나온 당신은 내게로 다가와. 언제나처럼 굶주린 채로. 그리고 언제나처럼, 나는 당신을 흙으로 돌려놔야 해. 올해도 불을 쓸 거야. 별로 잘 되는 것 같지 같지만.

 

낙엽이 질 때면, 마틸다. 일 년 내내 하던 질문에 또다시 사로잡히게 돼.

 

내가 보고 싶어서 당신은 자꾸 돌아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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