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밤 나는 할망에게 공격당해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잃어버렸다.
자세한 건 기억나지 않는다―그게 할망이 하는 짓이다―하지만 한밤중이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 뒤 초등 3학년 이전의 기억을 전혀 떠올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할망에 대해선 많은 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사람들이 텅 빈 껍데기가 될 때까지 그들의 기억을 빨아들인다는 말이 있다. 뻔하게도 그런 꼴이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할망이 그것의 먹잇감에게 가짜 기억을 심을 수도 있다고 한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한 가지만은 그래도 분명하다: 할망은 언제나 돌아온다는 것.
나는 준비를 하기로 결심하고 무기점에 갔다. 가게 바깥에 걸려 있던 ‘원조 총포상’이라는 간판이 인상적이었다. 작업복을 걸친 건장한 주인이 날 맞아주었다.
“원조에 잘 오셨습니다! 찾는 거라도?”
“제가… 할망이랑 싸워야 하거든요.”
주인은 멈칫하더니 은제의 화려한 리볼버를 꺼냈다. 약실이 그런데 세 개밖에 없었다.
“그 오래된 마녀를 혼쭐내려거든 여기 있는 거 중엔 이놈 뿐요.”
“왜 약실이 세 개밖에 없죠?”
“하나는 그 자식 박살내는 데, 두 번째는 빗나갔을 때 쓰쇼. 세 번째는… 그놈이 영혼을 먹어 치우기 전에 스스로 끝내고 싶을 때 쓰시고.”
그가 말한 것을 곱씹은 뒤 나는 리볼버를 샀다. 가게를 나서자 주인이 경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기억 조심하시고.”
…
똑 똑.
노크 소리가 새벽 세 시에 날 깨웠다. 나는 비틀거리며 현관으로 다가가 외시경 너머를 확인했다.
문 건너편에선 역겨운 회색 여인이 날 노려보고 있었다.
할망이다. 할망이 왔다. 그런데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까 이놈을 상대하려고 분명히 뭔가 준비했었는데. 나는 기억을 헤집었지만 아무것도 걸려 올라오지 않았다. 댐 같은 것이 생각의 강을 꽉 막아버린 기분이었다. 할망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내 기억은 망가지고 있었다.
문고리가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뭔가, 뭔가 날 지킬 물건이 있었는데.
문을 벅벅 긁는 소리가 났다.
갑자기 기억이 쏟아져 들어왔다: 원조 총포상에서 산 리볼버!
나는 문이 열리는 소리를 뒤로한 채 달려갔다. 나는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근 뒤 날뛰며 리볼버를 찾기 시작했다. 내가 그걸 어디에다 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벽장 안에? 서랍에? 침대 밑에 뒀던가?
나는 방의 모든 틈을 다 뒤졌다. 발소리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문손잡이가 떨리기 시작했다.
모든 곳을 싹 다 뒤졌는데! 설마… 아닌가? 그게 진짜 기억일까? 조금 전에는 분명 다 뒤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내 기억이 지금 이 순간에도 왜곡되고 있는 걸까? 그러면 혹시 다른 기억들도―
방문이 폭발하듯 열어젖혀졌다.
나는 할망과 그 구부러진 미소를 똑바로 대면하고 있었다. 할망의 뼈는 들쭉날쭉 어긋나있고 살갗은 회백색을 띠고 있었다. 톱날처럼 까끌거리는 이가 입안을 가득 메우고 드문드문 자란 머리칼이 늘어뜨려졌다. 그녀가 입을 열자, 내가 왜 리볼버를 찾을 수 없었는지 떠올랐다:
원조 총포상이란 곳은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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