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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의 아이

공포단편 번역

by 글문어말슴 2020. 6. 2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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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가둬놨지만, 그 애는 이따금 빠져나와요. 잠에서 깨면 내 방 바깥에 선 그 애가 보여요. 보통은 한밤중이지만, 가끔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그 애는 거기 있어요. 갑자기 거기에 있는 거예요. 이상하고 조용하게, 그 검은 구슬 같은 눈으로 날 빤히 바라보고 있어요. 그 안엔 영혼이라곤 없어요. 알죠? 그냥 텅 빈 거.

 

아빠는 걔를 조용히 시키면서 데려가요. 그 애를 가둬둔 뒤에는 내가 괜찮은지 보러 돌아오지요.

 

너에 대해 궁금한 모양이야, 엘리야(Elijah).” 아빠는 말해요. “걱정 마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할 테니까.”

 

아빠는 과학자세요. 그중에서도 최고죠. 나라를 위해 일한다고 나한테 말해줬어요. 정말 중요한 프로젝트죠. 인류를 위해, 라고 아빠는 말했어요. 엄청 많은 사람들이죠, 인류라는 건. 아마 수천 명은 될 거예요. 아니면 더 많아지거나.

 

너는 내가 지켜주마.” 아빠가 말해요. “넌 여기 있는 게 안전해.”

 

그래도 그 애가 탈출할 때마다 참을 수가 없어요. 걔는 너무 이상하고 조용하고, 또 항상 나한테 찾아온단 말이에요. 그 애가 그렇게 중요하면 왜 제대로 가둬두질 못하는 걸까요? 아니면 그게 그 애가 특별한 이유인가요? 벽을 통과한다든가 하는 능력이 있나? 우리 아빠가 걔를 그렇게 만들었다거나?

 

오늘은 좀 어떠니 엘리야?” 아빠가 물어봐요. 내 마음속엔 계속 그 구슬 같은 눈이 어른거려요. 그래서 아빠는 날 콕콕 찌르며 주의를 돌렸지요.

 

우리가 고쳐줄 테니, 걱정하지 마렴.” 아빠가 말해요. “그게 내가 여기 있는 이유잖니.”

 

이 온갖 튜브와 전선들을 견딜 수가 없어요. 하지만 난 팔도 다리도 없이 태어났으니, 이것들이 날 살려두는 거라고 아빠가 말했어요. 새 걸 자라게 해주겠다고 아빠가 약속도 해줬거든요. 우리 아빠는 위대한 과학자세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오늘은 새로운 약이란다, 엘리야.” 한 튜브에다가 검은 액을 채워 넣으면서 아빠가 말해요. “이번 건 예감이 좋구나.”

 

난 말을 못 해요. 소리는 낼 수 있지만 혀랑, 그리고 사람들이 성대라고 부르는 게 없이 태어났거든요. 그래서 뭔가 말해야 할 때는 눈을 움직여요. 그게 내가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곳이에요.

 

나중에 와서 상태를 한 번 보자꾸나.” 아빠가 웃어요. “테스트할 약이 조금 더 있단다.”

 

아빠는 하루에 6, 7개 되는 약을 나한테 놓아요. 대부분은 엄청 아파요. 내 피부에 뭔가가 자라요. 몸속에도 뭔가 나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좋은 일이라고 아빠가 말해줬어요. 그게 약이 제대로 되었다는 뜻이래요. 그리고 내가 점점 나아진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구멍 뚫린 건 신경 쓰지 마렴, 아빠가 말해요. 다 사라질 거야.

 

우리 아들은 여기 못 오게 하마.” 아빠가 말해요. ‘아들.’ 그게 그 애의 이름이에요. 난 걔가 그만 좀 탈출했으면 좋겠어요. 그 애는 계속 갇혀 있어야 한다고요.

 

그래도 난 우리 아빠를 믿어요.

 

아빠는 위대한 과학자세요.

 

날 고쳐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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