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이 추락이 멈추기를.
그것 말곤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딱히 설명해줄 게 없다.
나는 추락하고 있다. 고꾸라진다거나 사랑에 빠진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그래도 차라리 그런 것들이었으면 하고 바라긴 한다. 무엇이라도 이것보단 나을 것이기에.
확실한 건 어느 날 일어나 보니 내가 떨어지고 있었다는 거다. 그때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다. 사방에 아무것도 없으면 시간을 재는 게 힘들지만, 그래도 최대한 추측해보면 며칠은 된 것 같다. 주변은 새까맣고, 엄청나게 춥고, 아무 소리도 안 난다. 이런 식으로 계속 떨어지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떨어지는 느낌조차 들지 않는다. 그냥 뭔가 알쏭달쏭한 상태로 계속 있는 거다. 그래도 계속 머리칼이 위편으로 휘날리긴 한다. 그리고 그나마 이 감각을 통해 나는 가끔 내가 곤두박질치고 있다는 사실을 되새김한다.
부디 이 추락이 멈추기를.
꿈을 꾸는 것 같다. 음, 아마 악몽일 거다. 그리고 확실히 꿈은 아니긴 한데, 차라리 그랬으면 싶다. 잠이 들락 말락 할 때쯤 갑자기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 않나? 그거랑 비슷한데, 문제는 이게 느낌만이 아니라 진짜라는 거다. 무서운 것도 그렇고 점점 더 추워진다. (난 잠옷만 겨우 입고 있다) 아래, 아니면 내가 생각하기에 아래 같은 쪽을 흘깃거리자 아주 멀리 떨어진 조그만 빛이 보인다. 말 그대로 고생 끝의 광명이다. 지금 내 기분을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마침내 구원을 찾아내다니.
그 뒤로 조금 더 지났다. 몇 시간인가. 그리고 아직도 떨어지는 중이다. 빛이 조금 커졌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요새 나는 시간을 보내려고 잠을 꽤 많이 자는 편이다. 일어날 때마다 그리고 빛이 조금씩 커진다. 확실히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 작게나마 아래편의 소리도 들린다. 따스한 기운도 새어 나오고 있다. 그리고 무언가 역한 냄새도 희미하게 풍긴다. 조금 수상한 일이지마는 지금 내 상황이 너무 엉망인지라 딱히 다른 생각은 들지 않는다.
꽤 오래 잠들어있던 모양이다. 빛은 이제 빠끔 벌어진 구멍이 되었다. 훨씬 가까워졌고, 거기서 새어 나오는 열은 이제 무더위 수준이 되었다. 나는 땀 흘리며 옷가지를 벗어 던졌다. 그런데 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이제 주변이 시끄러워질 정도인데, 아무리 봐도 행복한 사람이 낼 법한 소리는 아니다.
그로부터 다시 시간이 흘렀다. 나는 공포로 굳어버렸다. 화끈거리는 열 때문에 피부가 익어버릴 지경이다. 나는 알몸이 되었지만 그게 별 도움은 되지 않는다.
발가벗은 채 허공을 가르며 떨어지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이 있다. 희미하던 소리는 이제 귀청을 찢는 아우성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저주를 진 자들의 비명이다. 유황의 악취가 내 코와 눈을 후벼판다. 구멍에 다다르는 순간, 내가 바라는 것은 이 추락이 영원히 계속되어 결코 저곳에 도착하지 않는 것이다.
부디 이 추락이 계속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