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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단편 번역

by 글문어말슴 2020. 5. 2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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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심연의 한가운데서 나는 눈을 깜빡였다. “이게 다예요?”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나를 지나쳐 끝없이 뻗은 잉크처럼 새까만 어둠을 빼고는. 계단에서 발을 헛디디는 감각을 영원까지 늘일 수 있다면, 아마 내가 지금 느끼는 것과 꽤 비슷한 기분이 될 것이다.

 

그래도, 술 취한 화물차 타이어에 짓눌려 아스팔트에 나뒹굴며 피 흘리던 것보다는 나았다.

 

이 저주받을 장소에 도착한 이래 내 주변에 있던 것은 어항에 담긴 금붕어 한 마리가 다였다. 그것을 입에서 거품을 연신 뿜으며 그 동글납작한 눈으로 날 비스듬히 응시했다.

 

뭘 기대했느냐?” 그 낮고 굵은 목소리가 주위의 공허를 뒤흔들었다. 보이지 않는 벽들이 요동쳤다.

 

모르겠네요.” 나는 쫑알거렸다. “천당, 지옥 같은뭐 그런 것들? 엘리시움타르타로스? 타카마가하라(일본 신화 속 신들의 땅)? 열반?”

 

그렇지 않다.” 물고기가 말했다. “우리뿐이니라.”

 

얼마 뒤 그것이 다른 말할 거리를 찾은 것 같았다.

 

네가 원한다면 이곳을 떠나도 좋다.”

 

, 사후세계로요?”

 

그런 셈이지.” 작은 오렌지색 물고기가 거인과도 같은 목소리로 답하는 것을 나는 지켜보았다. “네가 이번에는 어떤 현실로 갈지 정할 수 있다. 평행우주 이론이라는 것을 들어보았느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다. 네가 가 본 적 없는 세상에서 새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다. 물론 지금의 기억은 가지고 갈 수 없다. 너는 환생되는 것이다.”

 

그 조그만 물고기의 공허한 눈길에는 거짓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잠깐만요.” 나는 다소 더듬거렸다. “어떤 세상이라도 다 돼요? 공룡이 아직 살아있다거나, 아님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 못 한 곳이라거나?”

 

으흠.”

 

내가 아예 태어난 적도 없는 세상이라도?”

 

잊지 마라. 다른 세상에 들어간 너는 더 이상 지금의 네가 아니게 될 것임을.” 물고기가 가벼이 꾸짖었다.

 

밸브가 하프라이프 3을 낸 세상은요?”

 

그것이 위아래로 헤엄치며 끄덕였다.

 

폴아웃 76은 명작이고? 아니, 아니면 매스 이펙트 주인공이 살아남거나?”

 

물고기가 눈알을 돌릴 수 있는지는 처음 알았다. “그곳을 고르겠다면.”

 

나는 공허 한가운데에 앉아 긴긴 시간 내 미래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정했다.

 

나쁜 일이 가장 적게 일어나는, 최고로 좋은 세상도 되나요? 전쟁이나 기근이나 가정폭력이나 무서운 것들 전부요.”

 

물고기가 잠시 내 결정을 애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야,” 그것이 비탄에 잠겼다. “네가 몇 번이고 그와 동일한 것을 물었는지 모를 게다.”

 

나는 침을 삼켰다. 몸 안쪽에서 두려움이 차올랐다. “그런데요?”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물고기는 슬픔에 잠겨 거의 내 눈길을 피하다시피 했다.

 

그곳이 네가 지금까지 있던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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