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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병

공포단편 번역

by 글문어말슴 2020. 5. 1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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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이 원래 개 같은 병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이한테까지 들러붙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열세 살짜리 소녀라면 원래 학교나 같은 반 남자애들 걱정이나 할 나이다. 아무렴, 우리 부모님들은 걔가 아직 연애를 할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을 텐데.

 

진단이 내려진 뒤 아빠는 항상 달라붙어 크리스티를 보살폈다. 원래는 걔가 근처에 있는 것도 싫어하셨는데뚱땡이, 라고 아빠는 동생을 불렀다이제야 좀 마음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판사는 아빠가 주말에만 그녀를 볼 수 있다고 했지만 엄마는 동생이 아빠와 함께 있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우리의 양육비도 충분히 보냈고, 무엇보다 힘 있는 친구들도 많아 동생에게 줄 수 있는 것도 더 많았다. 암에 걸려 시들어가는 사람에게는 아무래도 엄마가 집이라고 부르는 사실상 오두막이나 다름없는 곳보다 수영장 딸린 대저택이 나을 것이었다. 그래서 크리스티는 아빠네 집으로 옮겨갔다.

 

*

 

크리스티가 진단을 받은 뒤 삼 개월 뒤 나는 해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녀를 보자 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내 여동생, 전에는 그렇게나 활기차고 사랑스럽던 아이가 이제는 해골처럼 변해 있었다. 말 그대로 말이다.

 

동생은 항상 좀 살집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의 짓궂은 농담에 쉽사리 주눅 드는 아이도 아니었다. 어쩌면 그 비슷한 말들을 집에서까지 들어서였을지 모르겠다. 자기 아빠라는 사람이 훨씬 심하게 구는데 반 친구들이 하는 말을 갖고 어떻게 상처를 받겠는가? 아빠는 항상 동생의 몸매를 마음에 안 들어 했고 그걸 입 밖으로 꺼내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이제 동생은 화학 요법에 시달리느라 위험할 정도로 삐쩍 말라 있었다. 우리는 같이 그 애의 침대에 누워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 순간이 꼭 영원처럼 느껴졌다. 내 여동생은 열세 살의 나이로 죽어가고 있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윽고 동생이 쉴 시간이 되었다. 방을 나가자 곧바로 아빠와 마주쳤다.

 

좀 어때 보이니?” 그가 물었다.

 

끔찍해요.”

 

그야 그렇지, 샤워 좀 해야 할 것 같긴 해.” 그가 말문을 열었다. “그래도

 

그는 말끝을 늘였다. 내가 그 뒤에 어떤 말이 올지 이미 알고 있다는 것처럼.

 

그래도 뭐요?” 내가 물었다.

 

좀 맵시 있게 됐잖아, 안 그러냐?”

 

화학 요법 때문에 동생의 살이 빠진 것을 아빠가 반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지기가 치솟았다.

 

좆까세요.” 나는 말했다. 아빠에게 조금이라도 그런 식으로 말해본 건 처음이었다. 그러자 속만 더욱 메스꺼워졌다. 어릴 적부터 내게 그가 자연스럽게 새겨넣은 것처럼, 아빠는 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힘 있는 사람은 존중을 받아야 했다.

 

놀랍게도, 아빠는 웃음을 터뜨렸다.

 

충격받은 모양인데, 긴장을 좀 풀어주마. 화학 치료가 네 동생의 징글징글한 살을 다 없애버리면 나한테 좀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니냐?”

 

자기 자식이 암 걸려서 그걸 치료해주는 게 감사받을 일이에요?”

 

그가 웃었다. “쟤가 암에 걸렸나? 그럴 수도. 정부에선 그렇다고 생각하니까.”

 

그가 윙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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