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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들이 비명을 지르는 이유

공포단편 번역

by 글문어말슴 2020. 5. 3.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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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멕시코의 칸쿤으로 날아가 제시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죄책감이 느껴졌지만 이번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공항을 떠나기 전 휴대전화를 버렸다. 푸에르토 후아레스까지 택시를 탔고, 거기부터는 배를 타고 들어가 성스러운 손실이라는 곳에 다다랐다.

 

섬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방파제는 오십 미터를 뻗어 나왔는데, 그것을 감싼 바다는 너무나도 얕고 맑아 황옥과 금의 빛깔로 번쩍였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다. 가만히 선 곳에서 수평선이 구부러지는 것까지 볼 수 있었다.

 

배에서 내리자 라몬이 섬의 가이드를 자처했다. 내가 천만 달러라는 거금을 냈기에 더욱 신경 써주는 것이 느껴졌다. 난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했다. 가능한 한 빨리 시술을 받을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방파제에 서서 지갑을 뒤적거렸다. 제시카의 사진을 꺼냈다. 내 예쁜 아내는 품에 귀염둥이 아냐를 안고 있었다.

 

나는 사진을 갈가리 찢어 파도에 흘려보냈다.

 

***

 

밤이 되자 라몬은 나를 사육실로 데려갔다.

 

사방이 어두웠고 좁은 선반을 둘러싼 사육장은 쉿쉿 소리를 내는 것들로 가득했다. 유리 뒤편에선 선명한 존재감을 뽐내는 바퀴벌레와 커다란 집게벌레, 갖가지 수생 곤충들이 뒤엉켜 서로를 물어뜯고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마치 그 겹눈으로 나를 쏘아보는 작은 얼굴들이 보인 것 같았다.

 

쉿쉿거리는 소리가 내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꼭 벌레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선반 뒤편에 다다르자 라몬이 고개를 돌렸다.

 

시작해도 될까요?” 그가 물었다.

 

그의 손가락이 셔츠를 헤치고 욱신거리는 내 가슴팍을 만졌다.

 

, 그렇군요.” 그가 웃었다. “큰 고통을 갖고 있군요.”

 

그는 팔을 거두더니 사육장의 문을 열었다. 온갖 곤충들이 법석대는 더미에 팔꿈치 깊이까지 손을 쑤셔 넣었다. 털이 부숭부숭 난 채로 몸을 비트는 벌레를 한 마리 잡아 올렸다.

 

그는 계속 꿈틀거리는 벌레를 내 얼굴에서 삼십 센티쯤 떨어진 곳까지 들이댔다.

 

시작할까요, 선생님?”

 

욕지기가 올라왔지만, 입을 열었다. 라몬이 그 크고 따뜻한 덩어리를 내 혀에 올려놓았다.

 

입을 닫으세요.” 라몬이 말했다. “삼키지 마시고요.”

 

나는 그렇게 했다.

 

겁먹은 벌레가 입안에서 미친 듯이 날뛰었다.

 

이윽고 느껴졌다!성스러운 손실이라는 곳에 대해 물었을 때 연락책이 귀띔해준 그대로였다.

 

아냐의 죽음을 곱씹는 고통이 내 갈빗대를 빠져나갔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꾸역꾸역 목구멍을 기어올라 입까지 올라왔다. 그리곤 입 안에서 꿈틀거리며 괴로워하는 벌레에게 달려들었다. 잠시 내 머릿속엔 두 마리의 벌레가 있었다. 그것들이 엎치락뒤치락 싸우더니, 이내 혀에 들어앉아 있던 놈이 축 늘어졌다.

 

나는 쓰러졌다. 그리곤 벌레를 뱉어냈다.

 

잘하셨어요, 선생님.” 라몬이 말했다. 아직 따뜻한 토사물에서 벌레를 건져내 사육장에 집어넣었다.

 

전화 너머로 울먹이던 제시카, 소아병동에서 온몸이 굳은 채 서서히 죽어가던 아냐의 기억이 더 이상 괴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둘의 얼굴을 떠올려보려 했다.

 

라몬은 며칠이 더 지나면 그들의 이름조차 잊게 될 거라고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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