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나벨은 인형을 정말 좋아해요. 정작 다루는 걸 보면 그렇게 느껴지지 않지만요. 그 애는 딱히 얌전하게 놀진 않아요. 새로 사준 인형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데 일주일도 채 안 걸리죠. 그 뒤엔 엉엉 울며 우리에게 와선, 강아지처럼 순박한 눈을 거짓 눈물로 그렁그렁 채운 채 부서진 인형을 꼭 쥐고 있죠. 엄하게 해보려고 매번 노력하지만, 언제나 딸애에게 새 인형을 사줄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마음이 모질지 못하거든요.
최소한 우리는 더 이상 비싼 인형은 사주지 않아요. 그런다고 특별히 오래 버텨주지 못한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은 까닭이죠. 며칠이면 딸애가 그걸 갈가리 찢어버리고, 그게 가치가 있는지 어떤지도 신경 쓰질 않는단 말이에요. 그게 우리가 낡고, 해지고, 손상된 인형들을 갖다주기 시작한 이유죠. 중고품이라고 하면 되겠군요.
내가 아는 곳이 몇 군데 있는데, 필요할 때마다 거길 들러서 새로 가져오는 식이죠. 그러자 효과가 있었어요; 애나벨도 좋아했고, 우리는 쓸데없이 고급스러운 인형을 구하려 진땀을 빼지 않아도 되었어요. 누더기 앤(Raggedy Ann, 상표명)을 말 그대로 산더미처럼 쌓아두면 거기에 도자기 인형 같은 게 더 필요하진 않잖아요?
새로 가져온 인형이 그런데 좀 수상쩍어요. 딸애가 그걸 안 망가뜨린 지 좀 되었단 말이죠. 2~3주쯤 됐나. 평소보다 훨씬 길게요. 에리카라고 이름도 붙여주더군요. 얼룩도 있고, 부러진 곳도 있는 갈색 머리 인형이에요. 눈은 단추처럼 새까매요. 흠집으로 너덜너덜해진 그 매끈한 피부만 봐도 꽤 오래 험하게 다뤄졌겠구나 싶단 말이죠.
그게 계단을 굴러떨어졌을 때 애나벨은 이상하리만치 화를 냈어요. 한쪽 눈이 튀어나왔을 때도, 실수로 배를 갈랐을 때도, 내가 떨어진 팔을 꿰매주어야 했을 때도요. 팔을 다시 붙여주자 딸애는 방에서 몇 시간이고 에리카와 함께 나오지 않더군요. 오해하진 말아요. 우리 딸이 인형에 애착을 가지는 게 나쁘다는 말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애 부모로서 정도라는 게 있잖아요. 내 말은, 딸애가 에리카가 울고 있다고 한밤중에 우릴 깨우는 그런 것들 말이에요. 그게 썩 좋은 일은 아니잖아요, 안 그래요?
이게 오래 가지 않을 건 알아요. 당연한 말이죠. 애들이 다 발달 과정에서 겪는 시기잖아요. 하지만 그래도… 좀 이상하다는 거예요. 알아요? 특히 그게 인형이라면 더. 특히 그게 들리지도 않는 소리를 듣는 거라면 더더욱이요. 내 말은, 그게 유일한 설명이잖아요, 그렇죠? 딸애가 다 꾸며내는 게 아니면, 정말 환청을 듣는 거겠죠.
“엄마.” 딸애가 말하더군요. “에리카가 나가서 놀고 싶대. 데리고 가도 돼? 으으으응?”
에리카가 말했다고요.
내 말은….
그건 불가능해요. 내가 직접 에리카의 혀를 저미고 플라이어로 끄집어냈는걸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인형이 뭔가 말할 수 있을 리 없어요. 의사소통을 못 하게 하려고 손가락과 발가락까지 다 도려냈단 말이에요.
딸애는 대체 누구랑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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