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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잊었다

공포단편 번역

by 글문어말슴 2020. 3. 23.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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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경 40AU(1AU : 천문단위,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 15000km) 이내의 우주선을 찾아줘.” 당신은 컴퓨터에게 명령한다차디찬 콕핏 안에서 떨리고 불안정한 목소리가 울린다. 비상 동력이 떨어져 감에 따라 당신은 며칠째 냉기를 견디고 있다.

 

당신이 우주선의 바닥에 누워 벌벌 떠는 동안 몇 시간이 흘러간다. 어쩌면 몇 초? 더 이상 그런 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전자 음성이 당신의 반쯤 깬 선잠을 찢고 들어온다. “결괏값이 불확정합니다. 40.00천문단위 이내 탐색 대상 없음. 불확정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 우주선의 손상 혹은 장해 요소를 확인하려면 센서를 점검해주세요.”

 

당신은 그것이 거짓말임을 안다.

 

당신의 우주선 센서에는 아무 손상도 없다.

 

반경 100AU, 1000AU 아니 5000AU짜리 스캔을 했을 때부터 그랬다.

 

맙소사, 그게 얼마 전이지? 지난주? 지난달? 세어 보긴 했나? 우주선을 떠나본 적은 있고?

 

돌연 컴퓨터가 삑삑 소리를 내뱉는다.

 

경고. 비상 동력 5%. 정전이 임박했습니다.”

 

당신은 싸늘한 공기를 뚫고 꾸역꾸역 일어선다. 무언가 말이 되는 것을 찾으려고 한다. 아무거라도.

 

당신은 여기에 친구들을 기다리려고 왔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창밖에는 검은 공허만이 당신의 시선을 휘감는다.

 

당신은 짧고 빠른 걸음으로 우주선 안을 서성이기 시작한다.

 

이게 무슨 일이지? 별들은 다 어디 있지? 왜 이렇게 어두워진 거야?

 

가빠진 호흡은 심박과 짝을 맞추고 나서야 겨우 빨라지길 멈춘다.

 

친구들이 당신을 이렇게 버려두고 갈 리 없다. 그렇지? 그렇겠지?

 

신이시여, 어디에 있는 거야?

 

친구들이 날 기억하고 있을 거야 그렇지?

 

그렇고말고!” 당신은 킥킥거리며 입을 연다. 아무렴, 당신은

 

당신은

 

그러니까

 

정확히 누구였지?

 

기억은 붙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당신의 머릿속을 빠져나간다. 당신은 누구일까? 어쩌다 그걸 잊게 되었을까? 당신이 처절하게 그저 딱 한 가지 무언가 확실한 생각을 붙잡으려 몸부림치는 동안, 어느새 당신은 얼음장 같은 바닥에 엎어져 숨을 토해내고 있다.

 

당신의 이름은 타일러였다. 아니, 기다려. 티모시. 아냐. ? 제기랄, T로 시작하는데, 그렇지 않나?

 

당신은 천천히 우주선의 콘솔로 기어간다. 흐느낌에 목이 메 비틀거리면서.

 

컴퓨터.” 당신은 떨며 속삭인다. “내가 누구지?”

 

컴퓨터는 이해할 수 없는 백색 소음을 뿜어낸다. 그 동력원이란 이미 오래전부터 티끌만큼밖에 남지 않았다.

 

괜찮아. 나도 나도 잘 모르겠는걸.” 당신은 대답한다

 

당신은 벽을 등에 대고 앉는다. 마지막으로.

 

괜찮아당신은 중얼거린다.

 

당신은 다리를 안아 가슴에 붙인다. 추위에 곱은 손가락들이 간신히 서로를 붙잡는다.

 

괜찮아

 

싸늘한 백색 소음을 뚫고 컴퓨터가 마지막 메시지를 출력한다: “동력원 고갈됨. 정전됩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테오 님.”

 

드디어, 당신은 눈을 감는다. 얕은 웃음을 내건 채 잠이 든다.

 

드디어 당신은 안심한다.

 

아무렴, 삶의 마지막 순간 당신의 최고의 친구가 함께 있었으니까.

 

우주에서 유일하게 당신의 이름을 기억해주는 무언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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